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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감정 쓰레기통

조합하는 버릇

by Becomingg 2021. 1. 23.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였다. 나는 이리저리 주변을 관찰하고 그 중에서 인상 깊은 하나하나들을 조합해 머릿 속에 그려보는 것을 좋아했다. 생각해보니 큰 상 수상을 의미하는 암묵적인 자리인 학교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은 것도 내가 가진 그 특성 때문이었다. 학교들은 학생들의 창의력 증진 때문인건지, 미술 실력을 끌어올리려는건지 꼭 사생대회를 종종 개최했다. 과학경진대회라든지 우주라는 단어가 들어간 대회들 말이다. 난 그날도 '또 그림을 그리라네, 뭘 그리지...'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 과학이나 우주라는게 뭔지 몰랐으니까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도 없었던거다. 그래서 펜을 쥐었다 놨다 아는 도형들을 그려봤다 지웠다하면서 큰 진전없이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다보면 내 자리가 고요해진다. 그러면 이 때다 싶을 때가 있다. 그 때부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피는거다. 교실 한 바퀴를 쭉 돌아보니 친구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나하나 질문해봤다. "이게 뭐야?", "이건 뭘 그린거야?". 색깔은 구분할 줄 알았다. 자리에 앉아 친구들의 그림 중 맘에들었던 요소들 하나하나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색깔은 그와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칠하며 마무리했다. 꽤나 완성작이 맘에들었다. 그렇게 그렸던 그림이 큰 상을 받은 것이다. 무언가 내가 정말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같다는 의문을 약간 품은채로... 이 의문은 다년간 해결되지 않았고 어디 한켠에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한다. 창의력이란 어떻게보면 없는게 아닐까? 우리는 無의 존재로 태어나는데, 모든건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며 조합해 만들어낸 결과물아닐까? 나는 이렇게 경험과 생각 또 경험과 생각을 반복하다 고요해지는 순간,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유명인들 중에 내 생각과 비슷한 맥락의 말들을 하는 영상을 우연히 보곤한다. Connecting Dots.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결국에는 경험한 하나하나의 지점들은 연결될 것을 믿으라했다. 그 지점들은 먼 훗날 우리가 삶을 돌아봤을 때 알게된다며 말이다. 도대체 이 두 이야기의 맥락이 어떻게 같냐고? 결국 우리의 지금에 중요한 요소는 각자의 경험과 지금 생각하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이 생각과 말들의 동일한 본질이기 때문이다. 어릴적 뭘 그려야할지 몰랐던 나는 펜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에 주변을 관찰하고 가져와 나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때의 관찰은 지금의 경험과 일맥상통한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지점들은 언제나 어떠한 곡선으로 향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는 언어만 다를 뿐 요즘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 잠재 의식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면 이제는 내 고유한 오랜 특성이 숨기고 싶은 버릇이 아닌 재능이라고 즐겁게 칭할 수 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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